사진=텐아시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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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한다고 그런다면서요? 한국에서는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너 모가지야"

아름답고 잔혹하다. 심각한데 우습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묘한 감각이 피어난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실직자들의 애처롭고 가혹한 일상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 그로테스크한 정서가 만들어내는 이질감과 괴리감은 관객이 영화에 집중하게 하는 요소다.

25년간 태양제지에서 성실히 일해온 만수(이병헌 분)는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는다. 가정도 이루고 집도 사며 '다 이뤘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만수. 아직 대출금은 남아있고 아들, 딸 키우는 데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실직하면서 일순간 앞길이 막막해졌다. 아내 미리(손예진 분)에게 자신의 실직 사실을 어렵게 털어놓은 만수. 3개월 내 반드시 재취업하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3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는 구직 중이다. 이에 미리는 '긴축 정책'에 돌입한다. 한편 만수는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재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궁지에 몰린 만수는 '다른 방법'으로 재취업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바로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진제공=CJ ENM, 모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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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는 번영하는 경제와 AI 등 발전하는 기술 속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절박한 인간들의 모습을 담는다. 주제 의식은 무겁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우스꽝스럽다. 평범한 가장이 위기에 직면한 뒤 도덕적 판단력을 잃고 '경쟁자 제거'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은 위화감을 준다. 이 위화감은 작품을 블랙코미디로 만드는 바탕이 되며 관객이 복합적 감정을 느끼게 한다. "어쩔 수가 없다"고 자조적인 말을 반복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개인의 힘으로 변화시키기 어려운 사회적·경제적 환경 속 무력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극 중에서는 제지업을 다뤘지만, 현실에서 제지업 외에 영화산업을 비롯해 수많은 산업의 근로자가 비슷한 현실을 겪고 있어 공감이 어렵지 않다.

경쟁자를 제거해야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만수식 사고방식은 상당히 어리석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쟁자를 밟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하는 잔혹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씁쓸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사진제공=CJ ENM, 모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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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학적 연출은 이번 영화에서도 절정을 이룬다. 강렬한 색감, 빛과 그림자의 대비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고뇌의 깊이를 시각적으로도 보여준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풍성한 작품이다.

긴 러닝타임에도 관객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배우들의 명연기 때문이다. 이병헌의 연기는 탁월하다.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이면서도 가부장적 남성, 선한 인간이면서도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 등 캐릭터의 다면적 모습을 겹겹이 표현해냈다. 손예진은 작품의 만화적 구성과 전개 속에서 현실감을 잡아준다. 아름다운 외모에 연기력까지 더욱 무르익었다.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차승원은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사연을 궁금케 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어쩔수가없다'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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