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얼굴'에 노개런티로 출연한 배우 박정민은 이같이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은 시각장애를 가진 전각 장인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백골 시신 발견 후 그 죽음 뒤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 연상호 감독의 신작인 이번 영화에 박정민은 "우선은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면서 노개런티 출연에 대해서는 "이 돈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는 거보다 '회식비라도 하셔라'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잘 보이고 싶었다. 이왕 도와드리는 거 화끈하게 도와드리는 게 좋겠다 싶었다"고 했다.
박정민은 1인 2역을 맡아 아버지 임영규의 젊은 시절, 아들 임동환의 현재를 연기했다. 젊은 임영규는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도장을 파며 성실히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임영환은 어머니가 백골로 발견되면서 어머니 죽음의 진실을 찾기 시작한 아들이다. 박정민은 1인 2역을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효과적일 거 같았어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아들 역할을 주셨어요. 아버지 역에는 권해효 선배님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젊은 아버지는 아들 역 배우가 하면 어떨까 싶었죠. 영화적으로 봤을 때 재밌을 것 같았어요.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면 젊은 아버지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제안했다기보다 젊은 아버지 역의 배우가 정해져 있는지 여쭤봤는데, 감독님이 제 의도를 간파하고 '1인 2역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말씀도 그겁니다'라고 했죠. 하하."

"'동주' 때가 생각났어요. 당시 강원 고성에 가서 3회차를 찍었는데, 그때는 하루 촬영 시간 제한이 없던 때여서 3일간 밤새 가며 서른 몇 시간을 찍었죠. 이번에는 극 중 방직공장 앞 세트에서 이틀 동안 주야로 엄청 찍었어요. 돌이켜보면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 신기해요."
스케일 큰 영화에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제작 환경이 당연시 여겨지는 업계에 '얼굴'의 작업 방식과 규모는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박정민은 "제작 환경을 잘 모르는 제가 말하긴 건방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 생각한 바는 있다. 영화 제작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며 지금 극장 환경에 맞춰가야겠구나 싶더라"고 말했다.
"감독님은 자기가 정말 해보고 싶은 얘기를 큰 자본의 논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온전히 해보고 싶어서 이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더 신나 보이는 느낌도 있었죠. 자기 회사 돈이니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하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해보자라고 하고 시작한 거죠.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감독님이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움직였어요. 이 영화가 영화 제작 환경을 완전히 뒤엎을 순 없겠지만 누군가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요. 나쁜 시도는 아닌 거 같아요."
박정민이 시각장애인 캐릭터 연기에 특수분장용 렌즈에도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력을 잃은 아버지가 떠올랐다고 털어놓았다. 박정민은 "작품을 선택할 때는 아버지를 떠올리진 않았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저도 어디 다닐 때 아버지한테 팔꿈치를 내어드린다거나 뭐가 있다고 얘기해 주거나 한다. 아들 역할을 할 때는 익숙해서 실제 내 모습이 나오기도 하더라"고 밝혔다.
"아버지 역할을 할 때는 달랐어요. 제가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순 없을 겁니다. 저는 보이는 사람이니까요. 열심히 준비해서 아버지한테 부끄럽게 않게 보여주고 싶은데 아버지는 볼 수 없다는 게 좀 이상했어요. 슬프진 않지만 좀 이상했죠. 아버지 삶을 조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박정민은 북토크쇼, 도서전에도 참가했고,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출판사 대표로서 일상도 일부 공개했다. 그는 "결국 또 사업이 끼다 보니 내 발로 뛰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더라. 찾아주는 곳에 다 나가야 하더라. 작가님들도 모셔야 하는 입장에서 그 분들의 결과물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뒷방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 입장에선 꽤나 좋은 결과가 있었다. 올해 출판사 하면서 여기저기 나가서 홍보도 하고 출판사 브랜딩도 했다. 그런 과정들이 좋았다. 앞으로는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불안하다. 차차 생각해봐야 하는데, 열심히 해서 기분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뿌듯해했다.
"세상에 나와야만 하는 책, 들여다봐야 할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아직 저희도 제대로 한 지가 얼마 안 됐어요. 계속 회사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데, 최대한 '착한 회사'가 되려고 합니다."
박정민은 뮤지컬과 연극의 특성을 모두 지닌 새로운 공연 장르 '라이브 온 스테이지' 무대에도 서기로 했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연극을 2017년인가 했다. 전에도 작은 연극들을 해오다가 처음으로 큰 무대에서 연극을 해봤다. 무서워서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섭외 제의가 왔던 모든 무대를 거절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제가 올 한해 좀 쉬겠다고 말씀드렸는데"라면서 "그냥 제가 근사해 보일 것 같았다. 오랜만에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고 출연 결심 이유를 솔직히 털어놔 웃음을 안겼다.
두려움이 사라졌냐는 물음에 "무서운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제가 그 작품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한다. 사실 거절하는 게 맞겠지 싶었는데, 고민하다가 유튜브로 공연 실황 영상을 봤다. 신기할 정도로 좋더라.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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