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그 배우는 거기에 있었다. 물론 그 흔한 연극영화과 출신도, 극단 출신도 아니었다. 하이틴 스타로 등장해 서서히 나이 먹어 간 것도, 조연에서 시작해 주연으로 올라온 입지전적 인물도 아니었다. 대학 졸업반 때 우연히 참가한 오디션을 통해 그 말간 첫사랑의 얼굴을 드러낸 문소리는 이후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분한 로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다 시집 못간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 유부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
KBS2 화 저녁 9시 55분 금잔디(구혜선)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해피엔딩이었다. 게임의 최종 관문이었던 '기억상실 과제'를 빛의 속도로 통과하고 최고의 기업가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구준표(이민호)의 동화 같은 프로포즈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것. 강회장(이혜영)의 급작스런 양순 모드, 윤박사(이정길)의 부재, 잔디와 지후(김현중)의 의사 가운 등 결말의 궁금증은 여전히 산재하지만 는 그 당연한 의문들이 유효한 세계가 아니다. 오로지 구...
고려판 알파걸이라는 천추태후의 재조명과 박력 넘치는 전투 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된 KBS 대하사극 .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여전히 는 종전의 사극들에 비해 내세울 만한 차별점이 있을까? 오히려 는 시간이 흐를수록 KBS 사극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쟁과 권력의 중심이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백성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북진정책과 영토회복을 고수하는 숭덕궁주(채시라)의 모습은 이전의 이나 에서 보아...
, 로 이어지는 송지나 작가의 한국 근현대 탐구가 드디어 현재 우리의 모습에까지 이르렀다. 송지나 작가의 복귀작 KBS 는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돈을 매개로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3월 31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는 KBS 조대현 제작본부장과 이응진 드라마국장, 연출을 맡은 윤성식 감독, 배우 박용하, 김강우, 박시연, 이필립, 박기웅, 한여운, 김뢰하가 참석했다. 돈...
EBS 밤 7시 50분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대체 뭘 팔기 위한 광고인 줄은 모르겠지만, 그 문장만큼은 참으로 공감이 간다. 그러나 집 밖으로 나가야 이야기가 생긴다. 까나리 액젓을 마시고, 잠들기 전 순위 선정을 하는 것도 다 집 밖에 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집을 떠나 모험과 탐험에 나서는 이들이 대여섯 살 난 꼬마들이라면, 재미보다는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치원을 벗어나 서당과 시골집, 딸기...
My name is 백승현. 원래 이름은 백승욱이었는데 데뷔 후에 바꿨다. 성명학을 잠깐 공부한 적이 있는데, 내 팔자가 배우 할 운명은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직접 이름을 고쳤다. 시간이 많았거든. 하하하. 1975년 3월 1일생 . 생일이 삼일절이다. 늘 휴일인거지. 어릴 때는 그게 참 가슴 아픈 타이밍이었다. 봄방학의 마지막 날이니까. 그래서 생일잔치를 화려하게 해 본 적이 없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 처음에 대학에 ...
복도는 어둡다. 인적조차 없다. 남자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고, 남자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얼굴에는 분노가 이글거린다. 사내의 어금니 사이에서 잘 씹어 만든 단어가 하나하나 예리하게 허공으로 내던져진다. “기니까, 너도 소중한 걸 한번 잃어 보라.” 최치수가 등장하는 순간 SBS 의 긴장은 단단히 조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해 보이는 그의 존재는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고, 시청자들을 숨죽이게 한다. 인물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각인되는 깊이는 결...
라면 물을 잘 맞춘다는 걸 제외하면 요리의 ㅇ도 모르는 나지만 지난 주말 엄마가 집을 비우셨을 땐 어쩔 수 없이 직접 저녁을 차려야 했다. 집 앞에서 '줄줄이 소시지' 한 봉지를 사 들고 들어가자 밖에서 밥을 먹고 왔다던 언니가 외쳤다. “나도! 나도 소시지 몇 개만!”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나에게 언니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당근을 내밀었다. “소시지 주면 3권 보여줄게.” 나는 군소리 없이 프라이팬을 불에 올렸다. 아베 야로의 ...
MBC 월 밤 11시 10분 토크쇼의 재미를 균질하게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불세출의 진행자가 등장하지 않고서야, 토크쇼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출연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주 장동건 같은 특급 스타를 모시거나, 부활의 김태원 같은 은둔 고수를 발굴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획과 포맷이다. 그런 점에서 는 그동안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연예인 그...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요즘 새삼 거울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외친다.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고 싶다!” 무릇 사람은 한낱 몸뚱이 보다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마땅하지만 육체의 노화를 지켜보는 것에는 절대 초연할 수 없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미세한 변화(어느새 눈가에 뻔뻔하게 자리 잡은 주름이나, 극도의 짜증상태에서 느껴지는 팔자주름, 인간의 신체부위가 어디까지 검게 변할 수 있나 실험하는 듯한 다크써클)에...
드라큘라는 사람들의 목을 탐하고 신선한 피를 빼앗지만, 김동호는 누나들의 마음을 뺏는다. 연신 껌뻑거리는 긴 속눈썹과 큰 눈은 소의 눈을 연상시키며, 중간 중간 유연하게 던지는 농담은 그가 왜 누나들에게 어여쁨을 받는지 단숨에 보여준다. 2005년 뮤지컬 으로 데뷔한 김동호는 이후 을 통해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고, 을 통해 영국인이면서도 아일랜드의 사회상과는 상관없이 축구를 했으며, 를 통해 강해보이는 겉...
지문 다가가기 “제가요, 사실은 이번 주에 딱 서른이 되거든요. 나이만 처먹어 가지고. 저도 스무 살 때는 꿈이 많았다 이거에요. 스물다섯 살쯤에는 유학도 갔다 와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서른 살 전에는 결혼도 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근데 지금은 스무 살 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 이거에요. 살만 더 찌고 얼굴에 주름만 짜글짜글하고. 니기미 씨발, 인생이 뭐 이렇게 개떡 같아요?”라고 영애씨가 말한 지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영애씨는 잠깐 연애...
사는 건 결코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막다른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우리는 때때로 그 위에서 해답을 찾게 된다. EBS 김진혁 PD 역시 그랬다. 영화나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93학번인 그가 대학에 가던 시절에는 연극영화과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차선으로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 2학년 때 영화보다 연애를 하느라 바빴던 그가 군에 갔다 돌아왔을 땐 이미 영화판에 뛰어들기엔 적지 ...
자연인 황정민을 지우는 작업이 어려운 것 같다. 황정민 : 그게 제일 힘들다, 솔직히. 대본 속 인물은 죽어 있는 인물이고 나를 통해 살아있게 되는 건데 그 인물이 내게 올 수는 없다. 내가 다가가야지. 우리가 친구 사귈 때도 내 것 좀 양보하고 이해해야 친구가 되지 않나. 그러려면 내 것을 자꾸 버려야 하고. 내가 조금 피해 본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그래야 친구가 되지.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역할을 맡는 건 친한 친구가 되고 싶은 욕심인 ...
새 영화 홍보만으로도 정신없을 시기에 황정민은 아침부터 드라마 타이틀 촬영을 하고 휴식 없이 드라마 포스터 촬영을 위해 신사동의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전날 밤 40도가 넘는 고열로 고생했다는 매니저의 귀띔. 누구보다 바쁜 시기를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그와의 인터뷰가 혹여 까칠하게 진행될까 걱정한 건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튜디오 뒤편에서 슬리퍼를 걸친 채 영화 석중 같은 서글서글한 미소로 “기다리느라 힘드셨죠? 여기 앉아서 진행하세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