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낙원'이 10월 21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WOWPOINT, CJ ENM
영화 '실낙원'이 10월 21일 개봉한다. / 사진제공=WOWPOINT, CJ ENM
재미와 흥미로운 소재는 갖췄다. 그러나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끝에 남는 감상은 묘한 허전함이다. 인물들의 감정선은 설득력을 잃고 결말은 성급하다. 그 빈틈을 메우는 건 오롯이 주연 김현주의 몫이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실낙원'(감독 연상호)은 9년 전 실종된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심리 스릴러다. '부산행', '반도'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으로, 김현주와 배현성이 모자 관계로 호흡을 맞췄다.

극 중 소영(김현주 분)은 9년 전 아들 선우(배현성 분)를 유괴 사건으로 잃었다. 이후 AI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을 통해 어린 아들의 모습을 구현하고, 그 안에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실종됐던 선우가 성인이 돼 돌아온다. 하지만 소영은 기쁨보다 혼란을 느낀다. 눈앞에 나타난 아들이 자신이 기억하던 선우와는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영화 '실낙원'에서 김현주가 아들을 잃은 엄마를 연기했다. / 사진제공=WOWPOINT, CJ ENM
영화 '실낙원'에서 김현주가 아들을 잃은 엄마를 연기했다. / 사진제공=WOWPOINT, CJ ENM
출발은 좋다. 9년 동안 아들을 기다린 엄마가 정작 진짜로 아들이 돌아오자 낯설어한다는 설정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AI 속 어린 아들과 함께해 온 엄마에게 현실의 아들은 반갑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영화는 '엄마가 사랑하는 대상은 진짜 아들인가, 박제된 기억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모성애를 무조건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그리지 않고 비틀었다는 점이 독특한다.

다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의문이 생긴다. 가장 큰 약점은 인물들의 감정선이다. 소영이 현실의 아들과 AI 속 아들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감정 변화는 충분한 설득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모순과 집착 역시 모성애의 일부일 수 있으나, 비약이 잦고 과장되다 보니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AI와 모성애의 결합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101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비슷한 감정을 맴돌다 정작 중요한 서사의 디테일은 놓쳤다. 소영이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도 왜 저렇게까지 행동하는지 공감하기보다 의문이 앞서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의 규모에 비해 설명이 길고 비슷한 감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반대로 정작 인물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 '실낙원'에서 배현성이 실종됐다가 돌아온 아들을 연기했다. / 사진제공=WOWPOINT, CJ ENM
영화 '실낙원'에서 배현성이 실종됐다가 돌아온 아들을 연기했다. / 사진제공=WOWPOINT, CJ ENM
서사의 빈틈 속에서도 김현주의 연기력만큼은 빛을 발한다. 9년 만에 아들을 되찾은 환희부터 낯선 존재를 향한 불안, 집착과 죄책감까지 복잡한 내면을 밀도 높게 표현한다.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에서도 눈빛 하나로 관객을 납득시키는 '연기 차력쇼'를 선보이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소영이라는 인물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김현주의 연기만큼은 설득력이 있다. 영화가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감정까지 배우의 연기로 이해하게 만든다.

반면 배현성은 아쉬움을 남긴다. 낯선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할 선우 역을 맡아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으나, 일상 대화마저 연극 대사처럼 읊는 어색한 톤이 몰입을 방해한다. 눈빛 하나로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김현주와 맞붙는 장면에서는 연기의 단조로움이 더욱 도드라진다. 특히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연극 무대에서 대사를 읊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들도 있다.

갈등을 장황하게 끌고 가다 급작스럽게 매듭짓는 결말 역시 허무함을 남긴다. '실낙원'은 분명 신선한 문제의식과 긴장감을 품은 영화다. 그러나 한 줄의 매력적인 콘셉트를 100분짜리 장편 서사로 온전히 지탱해 냈는가에 대해서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김세아 텐아시아 기자 haesmi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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